‘양자컴’ - AI·신약·우주·군사 패권 쥘 게임체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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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2 22:24 지비산업정보원본문
전세계 ‘양자컴’ 기술경쟁… AI·신약·우주·군사 패권 쥘 게임체인저
지난 6월 14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표지에 ‘고전적 방법으로 도달할 수 없던 물리학 영역에 접근하다’라는 제목으로 미국 IBM의 양자(量子)컴퓨터 연구 논문이 소개됐다. 양자컴 상용화의 걸림돌로 꼽히던 계산 오류 문제를 처음으로 해결했다는 발표였다. 지난 2월 라이벌 기업 구글이 양자컴의 연산 오류를 정정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나온 지 4개월 만에 수퍼컴퓨터 성능을 뛰어넘는 양자컴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양자컴이 본격 개발되기 시작한 지 20여 년 만에 상용화 길이 열리면서 전 세계 산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양자컴은 기존 디지털 컴퓨터를 뛰어넘는 연산 성능을 갖춰 ‘꿈의 컴퓨터’로 불린다. 수퍼컴보다 1000배 이상 빠른 연산 속도를 자랑한다. 인류가 구현할 수 있는 가장 파워풀한 ‘계산기’인 양자컴 기술을 손에 넣으면 AI·신약·우주·군사 등 미래 첨단 기술 패권을 거머쥘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단순히 개발 시간을 단축하는 걸 넘어 인류가 풀지 못한 난제를 해결하고, 세상에 없던 기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매년 1조원을 관련 연구에 쏟아붓는 미국을 비롯해, 중국·일본·유럽 등 강국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다.
◇AI·신약·우주 패권 달렸다
양자컴퓨터는 현재의 디지털 컴퓨터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기존 컴퓨터는 전자(電子)의 유무에 따라 0과 1로 정보를 표현하고 저장한다. 양자컴은 원자(原子) 수준의 미시 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한다. 양자역학 세계에서는 입자가 동시에 두 가지 상태를 가질 수 있다(양자 중첩). 이를 이용해 0과 1 두 상태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연산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진다.
양자컴은 전 세계 산업·과학계에 엄청난 파급력을 몰고 올 전망이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화학 물질의 특성을 원자 단위에서 파악하는 원천 연구부터 의료·제약 분야에서 인류가 찾지 못한 신물질을 발굴하는 데 활용되는 식이다. 현재는 신약을 개발하려면 수십만개 후보 물질의 효능을 일일이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10년 이상 걸린다. 반면 양자컴은 빠르면 수 분 만에 후보 물질을 추릴 수 있다. 기존 컴퓨터로는 만들기 어려웠던 신약 개발도 양자컴에서는 가능하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연산해야 하는 AI 개발에 적용하면 보다 고도화된 기술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챗GPT 같은 AI 기술이 인류가 원래 하던 걸 더 빠르게 풀어주는 기술이라면, 양자컴은 인류가 그동안 풀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며 “인터넷·스마트폰에 이은 새로운 테크 혁명이 될 것”이라고 했다.
기술 상용화에 임박하면서 글로벌 테크 기업들은 앞다퉈 양자컴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비만 치료 주사제 ‘위고비’를 개발한 덴마크의 노보노디스크는 지난해 9월 신약, 생명과학 연구에 특화된 양자컴 개발에 2억달러(약 26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업체는 “현재 컴퓨터로는 알 수 없는 생명의 비밀을 풀어 신약 개발과 맞춤 의학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독일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은 구글과 공동으로 양자컴퓨터를 신약 개발에 활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는 미국 아이온큐의 양자컴 기술을 활용해 전기차 배터리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상용화 근접한 미국, 中·日 거센 추격
미국은 양자컴 상용화에 가장 앞서 있다. 구글은 지난 2019년 53개의 초전도 큐비트(양자컴 정보 단위)를 이용해 수퍼 컴퓨터로 1만년 걸리는 문제를 200초 만에 풀 수 있는 양자컴을 개발했다. IBM은 올해 안에 1000개 이상 큐비트의 양자컴 개발을 마칠 계획이다. 중국은 양자컴 원천 기술에서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2021년 기준 글로벌 양자컴 특허 출원 점유율은 52.3%로 미국(10%)을 크게 앞선다. 일본에선 지난 3월부터 국립 연구 기관인 이화학연구소(RIKEN)의 양자컴을 대학·연구소에서 과학 연구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선진국과 5년 이상 기술 격차를 보인다. 현재까지 5큐비트 양자컴을 구현한 게 전부다. 세계 시장 점유율도 1.8%다. 정부는 이 같은 격차를 메우기 위해 지난 6월 오는 2035년까지 총 3조원을 투자해 4대 양자 강국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한상욱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양자정보연구단장은 “한국이 강국과 비교해 기술이 뒤처지는 건 맞지만 상온에서도 작동하는 양자컴을 개발하는 등 우리만의 방식으로 글로벌 기술 표준에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조선경제 최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