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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 2019년 기해년 황금돼지띠 이야기] | 2019.01.02 09:13:37
[지비산업정보원]
황금돼지와 붉은돼지
미야자키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중 붉은돼지가 있다. 중의적 캐릭터로 등장한다. 늙어가는 중년의 자의식이 돼지에게 투사되어 있다. 국가, 민족, 심지어 가족, 사랑으로부터 탈주하고픈 욕망의 현신으로 그려진다. 모라토리엄의 영화라고 선전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주지하듯이 모라토리엄신드롬, 모라토리엄증후군들이 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독립된 사회인으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는데도 그 책임과 의무를 기피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하야오는 자신이 그린 이 현실에서 탈주했을까? 탈주하기 위해서는 탈주하려는 현실의 정체성 천착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2019년이 밝았다. 돼지해라 한다. 본래 띠는 음력으로 환산하니 음력 설날을 기점으로 삼는 것이지만 양력이 생활화된 지금 그 정도의 주장이 설자리는 없어 보인다. 동짓날을 기준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양력 정월 초하루가 2019년의 시작이고 돼지띠의 시작이라는 점 불문가지다. 오래 전부터 띠에 속한 동물들의 속성이 마치 사람의 인격이나 성격을 결정하는 양 회자되어 왔다. 예컨대 양(염소)띠는 성격이 온순하다든지 돼지띠는 저돌적이거나 재력을 모을 수 있다는 따위의 생각들이다. 모두 속설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 설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해온 터라,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 치기 어렵다. 그래봐야 소용없기 때문이다. 벌써 황금돼지해 마케팅이 시작 된지 오래다. 심지어는 아이의 출산도 미루거나 당겨서 시기를 맞추려고 한다. 그냥 돼지띠도 아니고 황금돼지띠라 해서 그렇다.

왜 2019년 기해년이 황금돼지해일까?
기해(己亥)년의 기(己)가 여섯 번째 천간에 해당하는데, 오행 속의 황색에 해당한다고 해서 그렇다. 그렇다면 12년 전 2007년 정해(丁亥)년을 황금돼지의 해라고 했던 것은 가짜였나? 따지고 보니 정(丁)은 황색이 아니라 붉은색이었다나? 논리가 이렇다면야 천간의 색이 흰색이든 검은색이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황금을 담는 상자는 파란색으로도 만들고 검은색으로도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년 돼지해에는 전년 대비 출산율이 9.9% 늘었다는 보도들이 많다. 황금 마케팅은 말할 것도 없다. 올해 2019년 기해년은 그에 비하면 60년 만에 돌아오는 황금돼지띠의 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출산율이 10% 이상 올라갈 예상들을 내놓고 있다. 실제 그렇게 되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지금의 경제사정으로 보면 희망사항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황금띠만 그러겠는가. 백말띠, 쌍용띠, 백호띠를 넘어 황금호랑이, 황금용이 등장하지 말란 법이 없다. 2007년 황금돼지해에 출산하거나 투자하거나 사업을 벌인 사람들이 지금 어떤 자리,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가를 추적하면 금방 답이 나온다. 왜 이런 호들갑과 마케팅에 넘어가는 것일까? 다시 하나의 이야기를 인용한다.

숲속의 평화를 가져 온 공양돼지(供養猪)
어느 날 숲속에 파놓은 함정에 멧돼지가 빠졌는데 목수가 구해와 집에서 길렀다. 돼지가 영특하여 여러 가지로 목수 일을 돕는 것이 아닌가. 주인 목수는 그것이 기특하여 다시 돼지를 숲속으로 놓아 주었다. 숲속에서 돌아간 돼지는 호랑이를 물리쳤다. 다른 동물들이 초췌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호랑이에 대한 무서움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숲속의 평화가 왔다. 모두 돼지 때문이었다. 불교 본생담에 나오는 공양저(供養猪)의 전생 이야기다. 목숨을 구해 준 목수에 대하여 보은했다는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숲속의 평화를 이끌었다는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소개한 미야자키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한국의 민담 시리즈를 보면 이외의 돼지 설화들이 나온다. 최치원의 금돼지설화는 이 중 으뜸이다. 동굴의 돼지와 부인의 잉태, 곧 최치원이 돼지 아버지를 뒀다는 것이 골자다. 전국에 분포하는 광포설화다. 삼국유사 사금갑(射琴匣)이야기에는 돼지 외에 쥐, 까마귀의 협조가 등장한다. 해석이야 여러 가지로 할 수 있겠지만 황금돼지였기 때문에 어떤 이익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나는 공양저 이야기 속의 숲을 우리 사회로 해석한다.

시심(豕心)과 시시(豕視)를 넘어서는 2019년이기를
흔히 무모한 일을 행하는 사람을 향해 저돌적(猪突的)이라고 한다. 앞뒤 안 가리고 돌진하는 성격을 비유한 말한다. 금방 그림이 그려진다. 멧돼지가 코를 씩씩 불며 달려드는 형상 말이다. 부끄러움 한 치 없이 욕심만 창창해서 지나친 행동을 하는 자들이 누구일까? 이즈음 보아하니 정치인들 중에 저돌적인 자들이 많은 듯하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돼지 같은 자다. 시심(豕心)은 돼지의 가슴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말한다. 욕심과 허영이 가득 차 있음을 뜻한다. 시시(豕視)는 돼지의 눈으로 물상을 보는 것을 말한다. 시심과 일반이라. 모든 것을 그저 돈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이다. 맘몬을 하나님으로 모시는 몰지각한 종교인들이 여기 해당될 것이다. 시심(豕心)과 시시(豕視)를 넘어서는 지혜가 요구된다.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고 사람은 이름나는 것을 두려워해 한다. 중국 속담이다. 왜 우리에게는 살찌는 돼지를 경계해야 한다는 속담이 없을까? SNS며 저자에 난무하는 황금돼지 타령이 무색하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이름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도처에서 부끄러운 이름들을 내걸고 기만을 외친다. 황금돼지의 해, 황금 개의 해, 이런 시리즈물 같은 황금타령을 걷어치우지 않는 한, 재물과 물상에 사로잡힌 모라토리엄의 붉은 돼지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황금돼지해보다, 내가 지금 2019년 돼지해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돼지해는 그저 이전을 성찰하고 이후의 갱생을 설계하는 1년 단위 시간 분할의 기점일 뿐이다. 돼지에게 부끄럽지 않을 2019년, 숲속의 평화를 가져온 공양저(供養猪)라는 돼지를 묵상하는 정월 이튿날 아침이다.


출처 이윤선(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회 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