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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두렵지 않은 일본 혁신 기업들] | 2017.01.16 17:23:01
[지비산업정보원]
현재 한국이 처하고 있는 경제와 산업 상황에 대해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경제 및 산업동향 관련 지표와 기사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우울하기 짝이 없다. 우선 눈에 띄는 대목은 수출 경기 하락이다. 수출이 한국 경제의 견인차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그런 수출이 금년 들어 증가율 측면에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11월 들어 하락세가 살짝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여전히 전년 대비 마이너스 4.7%를 기록했다.

선진국이 시장을 만들면 빠르게 추적해 시장을 차지하는 우리의 소위 ‘추격자 전략(fast follower)’이 어느덧 앞서가는 일본과 뒤를 바짝 쫓는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를 맞이하고 있다. 최근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내 주요 업종별 단체 및 협회를 대상으로 ‘한중일 경쟁력 현황 비교’를 실시했다. 이에 따르면 가격 경쟁력이 중국에 밀린다고 응답한 단체는 조사에 응한 24개 중 21곳으로 88%였다. 기술에서도 이미 추월당했거나 3년 이내에 추월당할 것이라고 응답한 업체는 19곳인 79%로 집계됐다. 일본 기업에 기술적으로 뒤처진다고 응답한 단체는 13곳으로 54%, 가격 경쟁력마저 일본과 유사하거나 열세에 있다고 응답한 단체는 14곳인 58%였다.

추격자 전략으로 성장해 온 한국 기업들이 이제는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면서 동시에 여러 가지 위협적인 환경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군다나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비롯한 많은 연구 기관들이 지금의 한국 상황이 마치 20여 년 전 일본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이처럼 그 어느 때보다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시점이다. 특별한 환경적인 호재가 없는 이상 지금보다 더 어려운 시기가 닥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들이 해야 하는 고민의 방향을 우리보다 앞서 긴 불황의 늪을 헤쳐 나가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는 것은 이러한 차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전략1 핵심 역량에 집중하라
어두운 저성장의 터널 속에서도 나름 빛을 발하고 있는 기업들에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핵심 역량에 집중하고 이를 활용하는 것이다. 잘 알려진 사례로는 후지필름이 있다. 디지털 카메라, 폰 카메라가 확산되면서 후지필름과 함께 세계 필름 시장을 3분했던 코닥과 아그파는 시장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후지필름은 필름 시장에서 확보한 핵심 역량을 활용해 디지털 카메라 확산에 따른 위협적인 환경에 잘 대처했다. 예를 들면, 필름 제조에 사용하던 콜라겐 활용 기술이라든지, 사진의 변색을 막는 황산화 기술 등을 이용해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러한 기술들이 활용되는 디스플레이 소재와 화장품·제약 등으로 빠르게 사업을 확장해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캐논은 광학 기술을 근간으로 하는 정밀기계 기술, 미세 전자 기술을 통해 카메라, 사무용 기기, 레이저 프린터, 웨이퍼 가공 장비 사업 등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혼다도 엔진 기술과 모터 기술을 바탕으로 동력식 잔디깎이에서 시작해 오토바이·자동차·비행기까지 라인업을 구축해 경영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이처럼 후발 기업이 따라가기 힘든 명확한 핵심 역량을 가지고 치열한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기업으로서는 가장 바람직한 전략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예를 더 살펴보자.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할 수 있는 1989년부터 2013년 사이에 매출은 3.1배, 순이익은 15배,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은 2013년 13%로 무려 5배 정도 증가한 기업이 있다. 바로 자전거의 변속기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시마노다. 웬만한 자전거의 변속기를 보면 시마노 제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전 세계 경주용, 산악용 자전거 변속기의 절반 이상이 시마노 제품이기 때문이다.

시마노는 금속가공 기술을 자전거 부품 분야에 특화해 나갔고 지속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매우 편리한 변속기를 개발했다. 이 변속기는 시마노 토털 인테그레이션(STI) 시스템이라고 불렸는데, 자전거를 운행하면서 핸들에서 손을 떼지 않고 핸들에 장착된 레버로 기어를 바꿀 수 있는 제품이었다. 이는 변속 레버와 변속기·체인·기어를 일체화할 수 있는 기술로, 시장의 표준 기술로 도약하게 됐다. 그뿐만 아니라 금속가공에 있어서도 기존의 열간 단조를 냉간 단조로 가공하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비용도 대폭 절감했다.

전략2 시대의 트렌드를 읽고 대응하라
둘째, 시대적인 트렌드를 읽고 이에 대응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소프트뱅크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1990년 이후 일본 산업에서의 가장 큰 트렌드는 인터넷 확산에 따른 정보기술(IT)화의 급속한 진전이다. 소프트뱅크는 이러한 점을 간파해 주식공개로 확보한 자금으로 IT 분야에 대한 투자회사로 거듭났다. 현재 1300여 개의 기업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단연 압권은 중국 인터넷 기업 알리바바에 대한 투자다. 소프트뱅크는 알리바바 주식의 30%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이를 확보하는 데 투입된 금액은 20억 엔(약 192억 원)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미국 증시에 알리바바가 상장하면서 확보한 가치는 8조 엔(약 77조 원)으로 약 4000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투자 수익을 올렸다.

그뿐만 아니라 소프트뱅크는 인터넷 통신망 서비스·이동통신·인터넷 게임·모바일 게임 등 다양한 IT 분야에서의 신사업을 전개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소프트뱅크는 클라우드 네트워크, 소셜 미디어 등 새로운 IT 환경에서 게임을 전략적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을 특정 세대가 아니라 모든 세대를 포용하는 공통적 체험이자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인식하고 관련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33.7%의 지분을 보유한 겅호온라인엔터테인먼트는 이러한 전략을 반영해 전 세대를 아우르는 게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회사의 대표적인 스마트 폰 게임 ‘퍼즐&드래곤즈’는 2012년 발매 이후 가입자가 50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성공했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최대 게임 회사인 닌텐도와 시가총액 선두를 다투고 있다. 한편 소프트뱅크는 투자 후 성과가 미진하거나 트렌드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신속하게 철수하거나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한국에도 진출해 있는 MUJI(무인양품)는 불황기에 발생하는 경제적 소비 패턴의 트렌드를 겨냥했다. 말 그대로 브랜드는 없으나(無印) 품질은 양호한(良品) 제품을 표방한다. 유통회사 세이유가 설립한 MUJI는 장기 불황기에 점포 수와 매출 면에서 급성장했다. 이러한 성공의 바탕에는 백화점의 70% 가격에 판매하는 저가격 전략, 불필요한 공정과 재료를 과감히 개선하는 개선 전략, 새로운 소재 개발 전략 등 다양한 혁신적 발상이 존재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전략을 구사하는 경쟁 기업으로는 역시 한국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유니클로를 들 수 있다.  

전략3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라
셋째,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장은 지역과 제품 두 가지 차원에서 고려될 수 있다. 지역 확대 측면에서 일본의 생활용품 기업 카오는 1990년대 후반부터 종이 기저귀와 여성 용품 부문에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카오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경제성장에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경제성장을 통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000달러를 넘으면 여성 용품 시장이 확대된다. 그리고 3000달러를 넘으면 아기 용품인 기저귀 시장이 확대된다. 이러한 판단 아래 두 가지의 전략 아이템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 시장을 적극 공략했다. 카오는 이 시장에서 30%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초기에는 프리미엄 제품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점차적으로 현지 소비자의 니즈를 고려하면서 저가 제품까지 라인업을 구축하면서 시장을 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또 다른 차원은 기술 개발을 통해 새로운 제품으로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들 수 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휘발유와 배터리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 자동차다. 이는 21세기에 들어 지구환경 악화에 대응할 수 있는 친환경 자동차로 각광 받고 있다. 자동차 연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면서 전후 일본 발명품 중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아이템 중 하나다.  

기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사업 초기 단계에서 가질 수 있는 소비자들의 신제품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도 역점을 뒀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근본적인 가치와 도요타의 브랜드 파워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하이브리드 자동차라면 도요타’라는 브랜드 전략을 구사했다. 이러한 전략은 친환경 자동차 시장에서 도요타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해 경쟁사 진입에 대비한 하나의 진입 장벽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한편 관련된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특허를 통해 원가절감 측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장기 불황 가운데서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는 일본 기업들을 살펴봤다. 한국의 미래는 결코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앞서가는 일본과 코밑까지 추격하고 있는 중국 사이에서 많은 기업들의 고민이 크다. 더 이상 선진 기술과 전략을 빠르게 쫓아가는 전략으로는 이미 한계가 있다. 어쩌면 우리가 걸어가게 될 길을 걷고 있을지 모르는 일본 기업의 사례에 앞으로 가야 하는 방향에 대한 인사이트가 있을지 모른다.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한 해를 맞이하며 한 번 생각해 볼 이슈다.

강성호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